: 우리 집에도 전통의 시간이 녹아든다면

한국의 모던 인테리어에서 클래식을 찾아보기

: 우리 집에도 전통의 시간이 녹아든다면

20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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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1. 급격한 산업의 발달과 한국의 인테리어

02. 현대의 공간에서 사라져 간 것들

03. 전통과 모던의 그라데이션이 보이는 공간


요즈음은 공유숙박 플랫폼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는 까닭에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던 나라의 작은 마을 한복판에서 그 곳의 주민이 된 것처럼 몇 날 며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누려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오래된 아파트를 개조한 여행지의 호텔이나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본 경험은요? 프라하에 있는 5층짜리 건물 안의 민박집을 하나 예시로 상상해봅시다. 100년이 다 된 건물 안에는 아직도 잘 작동하고 있는 파터노스터(Paternoster)식의 순환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숙소가 있는 3층에서 내립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빅토리아 시대의 커다란 옷장입니다. 옷장이라면 드레스룸이나 침실에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가구가 가진 웅장함과 화려함이 집안의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입니다. 현관 문 옆 열쇠와 외출용품을 놓아 두는 콘솔은 심지어는 앤틱이라고 할 수 있는 코로로 풍의 스타일을 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집은 끊임없이 보수하고 고쳐서 사는 것, 가구는 대물림해서 쓰는 것이었습니다.

 

옆 나라 일본은 지진이 잦아 저층의 목조주택을 중심으로 주거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때문에 고층건물이 있는 도심지역을 벗어나 교외로 갈수록 일본식 가옥의 형태가 유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 보존된 가옥 안 거실에 있는 다다미 바닥과 코타츠 테이블은 전형적인 일본의 가정의 인테리어를 보여줍니다. 안방에는 커다란 붙박이장(오시이레)이 있고, 그 옆으로는 불상이나 제단을 꾸며 두는 부쯔단이 있습니다. 만화영화 ‘짱구’에 나오는 짱구의 집도 일본식 가옥의 연장선 상에서 볼 수 있겠네요.


01. 급격한 산업의 발달과 한국의 인테리어


 


 ① 빠른 산업화와 아파트의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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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나라의 집과 인테리어에서는 이러한 전통의 숨결을 느끼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도시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1950년대 초반 전 국토가 전쟁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고, 전후 국토의 파괴와 낙후된 산업, 경제 여건 속에서 전국적인 재건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DNA에는 ‘빨리빨리’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하죠. 한국은 정부 주도 하에 효율과 속도를 우선하여 단기간 안에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는 비단 경제‧산업 정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화 과정에서도 목격할 수 있으며, 현재 우리의 주거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60년대에는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추진하면서 도시화가 가속화 되었습니다. 일자리의 증가로 인해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급증했는데, 이로 인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택지 개발이 필수였고 수직적인 주거 형태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최적의 방안이었습니다. 표준화된 평면도를 바탕으로 한 높은 용적율의 아파트는 단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인구를 도시 안에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 방공호로서, 군사적 주요 시설로 기능할 수 있는 콘크리트 숲으로써 아파트의 역할은 물론이고요. 사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도입 초반에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도 했지만, 점점 대중적인 주거 옵션이 되었습니다. 깔끔하게 도장된 벽과 보일러 시설, 편리한 주방과 화장실이 갖추어진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것은 현대식의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빠른 시간 안에 일터로 이동할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② 새 것, 그리고 자산이 되는 것에 대한 선호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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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도시개발과 쾌적하고 편리한 주거환경에 대한 선호, 표준화된 평면도가 주는 안락함은 동시대의 주거문화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국가의 사람들보다 신축에 대한 선호가 높은 편에 속합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경제를 바탕으로 집값이 꾸준히 상승세를 타 온 상황에서, 표준화된 모양새의 주거공간은 집으로서의 기능에서 자연스럽게 화폐로서의 기능이 강조되는 형태로 나아갑니다. 물론 가치가 점점 증가하는 화폐이지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의 재개발‧재건축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는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갑니다. 수직 개발을 통해 추가적인 주택을 분양함으로써 개발에 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거주자 입장에서는 더 ‘낡고 오래된 공간’을 더 ‘새 것’으로 바꿈으로써 자산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거주지 뿐 아니라 인테리어, 가구, 벽지, 그리고 세부적인 인테리어 소품까지 ‘모던함, 새 것이 주는 깔끔함과 쾌적함’이 선호되는 배경입니다.


02. 현대의 공간에서 사라져 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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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도로 보급된 아파트, 그리고 깔끔하고 새로운 공간과 사물들이 선호되는 주거‧인테리어 문화에서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은 꽤나 많습니다. 몇 십 년 전 고급 가구로 취급되던 부모님의 자개장이 대표적입니다. 아파트 안의 입식 주거방식에서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고가구 역시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방탁자는 조립식의 격자형 수납장으로, 문갑과 반닫이함은 MDF 소재의 커다란 서랍장으로, 소반은 작은 소파테이블이나 사이드테이블로 대체되었습니다. 사실 굳이 오래 전의 고가구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덕선이네 집에 있을 법한 괘종시계와 레트로풍의 선풍기 역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03. 전통과 모던의 그라데이션이 보이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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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는 변화하고 사람의 취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기 마련입니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아름다운 전통 디자인과 문양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던 장인의 숨결, 단아함을 간직한 고가구가 단번에 사라진 것은 애석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복고풍의 컨셉과 레트로가 다시금 주목을 받으면서, 과거의 인테리어가 마냥 촌스럽기만 한 것으로 인식되던 시각에도 어느 정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던 체리색 몰딩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리는 대신 집 안의 가구들을 좀 더 톤 다운된 색채로 꾸며서 체리색이 주는 특유의 따뜻함을 살리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오래된 주택의 천정과 벽에 덧대어진 나무 소재의 벽재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자개 장롱이나 화장대를 처분하지 않고, 자개가 있는 문짝 부분을 따로 떼어내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적절한 형태로 리폼을 해도 좋습니다.

 

할머니 집에 있는 낡아 보이는 소반 역시 버릴 것이 아니라, 상처가 난 부분을 잘 메꾸어 옆에 두고 햇살 좋은 날 차를 한 잔 해 본다면 좋겠지요. 뉴욕 한가운데의 고층 스튜디오 안에 배치된 티크목의 빈티지 가구가 아름다워 보이듯, 서울 한복판의 모던한 인테리어를 한 거실에 놓인 사방탁자 역시 그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좀 더 많은 공간에서 보이기를,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빨리 사라지지 않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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