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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오디세이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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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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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1. 진화의 시작

02. 창 밖으로 나온 오피스

03. 모던 타임스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전 세계 3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고 올 들어 두 달여간 미국 테크 기업에서 약 4만 9000여 명 이상이 해고되었습니다. IT, 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인력을 AI로 대체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지만 그렇다고 모든 분야에서 사람의 일자리가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피스(office)의 라틴어 어원은 opi(work)와 facio(make, do)로 ‘일을 하다, 일을 만들어 냄’이라는 뜻인데요.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가 큰 변화를 맞이할 때마다 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바뀌면서 공간도 바뀌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 고대 필경사의 책상 위에는 양피지와 파피루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기 110년 경 포장용으로 사용되던 종이가 기록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14세기 유럽에서는 각지에 종이 공장이 생겨났죠. 15세기에는 구텐베르크의 근대적 인쇄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지식을 접하는 이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는 상업과 음악, 문학 등에 큰 발전을 가져다주었죠. 시간이 흘러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타자기와 전화가 책상 위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를 컴퓨터에게 내놓게 됩니다. 이렇게 기술은 일을 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관여해 왔습니다.



01. 진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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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진화의 시작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의 사무실은 이것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기원전 2000년쯤 이집트에 원시적인 형태의 사무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곡물이나 노예의 수를 세고 기록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창고 모형 토기가 고대 이집트 11 왕조 시대의 총리 메케트르 무덤에 부장품으로 안치한 모형들 중 발견되었는데요. 가장 오래된 사무실이라고 알려져 있죠.
 

이후 고대부터 중세 시대 왕궁에는 법률이나 각종 문서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방들이 있었고 수도원에는 종교의 연구와 기록을 위한 수도사들의 작은 집무실이 있었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수도원 밀실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1495경)>나 얀 반 에이크의 <연구하는 성 제롬(1442)>을 통해 당시의 집무실을 엿볼 수 있는데요. 매우 협소한 공간에 들어앉아 선반이나 작은 책상을 두고 집중력을 높이려 커튼을 단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업주의가 발달했고 상인들이 새로운 경제 엘리트 계급으로 부상합니다. 영업과 사무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필요해지자 지금의 오피스와 흡사한 형태의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도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가 사무용으로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우피치(Uffizi)는 이탈리아어로 '집무실'을 뜻하죠. 건물의 1층은 집무실, 2층은 예술가들의 작업실, 3층은 작품의 전시실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상업의 활성화는 유통, 사무와 보관을 위한 공간을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 상인들은 요즘의 공유 오피스처럼 한 건물에서 공간을 공유하기도 하고 사업을 위한 단독 건물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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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창밖으로 나온 오피스


이후 항해술의 발달로 왕성한 국제 무역이 성행하면서 1600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세계 최초의 종합 무역상사를 설립합니다.

하지만 바로 오피스 건물이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사무실은 집 안에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후 동인도 회사를 설립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전문직을 가진 이들이 재택근무의 형태로 일해왔던 집에서 분리된 사무실을 갖게 됩니다.

18세기에 이르러 나타난 최초의 오피스 건물은 해양 지배권을 두고 싸우는 과정에서 커진 해군력을 관리하기 위해  1726년 지은 대영제국의 왕립 해군 본부 올드 애드머럴티(Old Admiralty)로 알려져 있습니다. 곧이어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과도 같은 규모의 영국 동인도 회사도 1729년에 런던에 본사 건물을 짓고 인도 식민지 관리에 필요한 행정 관리 시스템을 발전시켰는데요. 지금과 같이 출퇴근을 하는 수많은 직원들이 고용되게 됩니다. 이후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으로 철도, 보험, 은행, 전신 등과 같은 대형 산업이 활황을 맞이하면서 전문화된 업무 전용 공간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근대적 의미의 사무공간은 1800년대 유럽에서 등장했죠. 사업가들은 저택 안에 집무실을 두고 가족과 운영을 하거나 셜록 홈즈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주택을 개조해 보조 사무원과 일을 했습니다. 백악관도 집과 사무실이 한 건물에 있는 형태인데요, 오늘날의 홈 오피스와 흡사합니다. 많은 기술 혁신이 일어나던 이 시기 타자기, 전화기가 발명되면서 사무업무는 세분화, 전문화되어 점점 오피스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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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모던 타임스



본격적인 사무실의 태동은 1900년대 초반입니다. 금융업과 무역, 제조업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문서들의 관리가 필요해졌고 이를 위한 사무공간과 사무직 고용이 일어났습니다. 본격적인 화이트 컬러의 등장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소설이나 기록을 보면 사무원에 대해 낮게 평가한 대목을 여럿 접할 수 있습니다. 농경시대를 지난 산업혁명 시대에도 진정한 일이란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었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뭔가를 끊임없이 적어대는 모습은 비아냥을 샀고 비생산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무공간의 필요가 증대되면서 거대한 오피스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게 되면서 대도시 중심의 사무직이 늘어나고 전화로 업무 소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대 사무실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요. 미국의 경영학자이자 엔지니어였던 프레드릭 테일러입니다. 그는 특정 직무의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동작을 측정하는 연구로 테일러리즘(Taylorism)을 창안합니다. 그는 표준화된 하루 작업량을 제시하고 과학적인 과업 관리와 성과급 제도를 채택함으로써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했고 테일러리즘은 1920년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됩니다. 공장 산업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는 서류 작업 역시 공장의 대량 생산의 작업과 같은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무업무도 기계적 시스템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가 만든 사무실은 넓은 오픈 플랜 공간에 최소한의 여백만을 허락하고 가능한 많은 책상들을 줄 맞춰 배치한 형태입니다. 이 시스템은 관리자가 직원 모두를 한눈에 지켜볼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오픈 플랜은 철골구조의 건축이 가능해지면서 넓은 내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오피스 건물에 상용되었는데요. 엘리베이터와 건축 구조 기술의 발전은 건물의 고층화와 대형화를 부추겼고 공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정형화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했습니다.

경제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친 후 독일에서는 사무실 조경이라는 의미의 뷔로란트샤프트(Bürolandschaft)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독일의 컨설턴트 회사인 퀵보너 컨설팅 팀이 제안한 이 개념은 사무 공간에 대해 커뮤니케이션과 유연성,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자유분방한 형태를 제시합니다. 사무실을 유기적이면서 네트워크화된 서류들의 연결망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할 수 있는 별도의 휴식 공간을 제안합니다. 역시 오픈 플랜의 개방형 사무실이었지만 테일러리즘과 반대로 불규칙하게 공간을 구성하고 책상 사이에 식물이나 스크린을 배치해 공간을 분리하도록 했습니다. 얼마든지 손쉽게 재배치를 할 수 있었죠. 이 개념은 미국으로 건너가 환영을 받았고 많은 기업들이 저렴하고 유기적인 공간 시스템을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오픈 플랜의 특성인 소음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받습니다. 그럼에도 오픈 플랜은 넓은 공간과 설비의 공유, 유연성 측면에서 사무환경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속적으로 선택받게 됩니다.

 

뷔로란트샤프트를 지지했던 미국 사무용 가구 회사 허먼 밀러의 컨설턴트인 로버트 프롭스트는 개방형 공간이 직원 간의 소통을 오히려 줄인다고 보고 모더니즘 가구 디자이너 조지 넬슨과 함께 열린 공간 안에 사생활을 확보해 주면서 직원들이 보다 업무에 집중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워크 시스템을 고안합니다. 바로 액션 오피스입니다. 지금 보아도 멋진 심플한 외관을 갖춘 이 시스템은 디자인적으로 상도 받았지만 액션 오피스는 높은 가격과 모호한 공간이라는 평을 받으며 확산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4년 후 액션 오피스 I을 개선한 액션 오피스 II가 발표되는데요. 둔각으로 배열된 세 개의 모듈식 파티션은 가벼운 일회용 소재로 만들어졌고 다양한 높이의 선반이 있는 책상이 놓여있어 자유롭고 쉽게 공간을 재배치할 수 있는 워크스테이션으로 많은 찬사와 관심을 받으며 널리 상용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롭스트의 의도와 달리 액션 오피스의 공간은 직각이 된 파티션 체인들로 변모하고 테일러적인 새로운 경직성을 만들어내며 순환되지 못하는 공기와 채광이 들어오지 않는, 소음이 가득한 공간으로 전락합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칸막이 사무실의 풍경이죠. 

 

정형화된 구조를 벗어나 오픈 플랜 내에서 효율적인 업무의 흐름과 의사소통에 중점을 둔 뷔로란트샤프트 방식, 평등한 사무 공간을 만들고 필요에 따라 간이 칸막이로 유동성 있는 공간과 의사소통의 흐름을 만드는 유니버설 플랜 등 자유로움과 정형화에 대한 융합을 시도하며 오피스는 계속해서 발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오픈 플랜 안에서 이루어졌고 테일러리즘부터 지속적으로 대두되었던 문제들을 여전히 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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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는 상업과 긴밀한 관계에 놓인 경제활동을 위한 사무공간입니다. 처음에는 일부 고위 성직자나 왕족,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상업이 발달했던 시기에는 어김없이 사무실의 수요가 늘어났고 규모도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를 맞으며 오피스의 입지는 더욱 견고해지게 됩니다. 이렇게 사무실은 귀족이나 영주의 넓은 저택 안에 있다가 대중교통, 상업, 무역, 통신의 발달로 집에서 뛰쳐나와 대형화와 집중화가 이루어진 현대의 오피스 형태로 진화하게 됩니다. 결국 사무실은 재택근무에서 출발한 것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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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아보면 흥미로운 순환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2020년 이후 오피스에서 재택근무로 전환되고 있는 현상은 오피스가 출발선으로 돌아가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동인도 회사가 생기기 이전에는 사업을 위한 많은 업무들이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졌었는데요. 시대 여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지금의 우리가 사무실을 떠나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하고 사내에도 멋진 카페가 들어서는 건 재미있는 오마주라고 생각됩니다. 액션 오피스가 나오기 이전 중세 수도사의 집무실은 사생활 보호와 집중력 향상을 위해 커튼에 파티션의 역할을 맡겼고 많은 단점이 있어왔음에도 1920년대 사용된 오픈 플랜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정형화와 비정형화를 두고 핑퐁처럼 이어지는 오피스의 역사는 한편으로 오피스 공간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도 합니다.


‘오디세이’는 긴 모험을 담은 여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지금의 사무 공간은 주거 공간보다도 많은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또다시 기술은 새로운 오피스 문화를 만들어내며 그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사무 공간의 현재와 미래의 사무 공간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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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콘텐츠 중 미국 테크기업의 인원 감축은 기술분야 감원 추적사이트 ‘레이오프’에서 발표한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 해당 콘텐츠는 (주)엘엑스하우시스에 귀속되며, 무단으로 이용할 경우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해당 콘텐츠의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주)엘엑스하우시스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 해당 콘텐츠 내 이미지는 클립아트 코리아에 유료로 제공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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