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식 문화에서 찾은 실내 온도 낮추는 공간 디자인
[목차]
01. 좌식 구조의 기후적 지혜
(1) 한옥의 마루: 땅과 떨어진 시원한 삶
(2) 다다미 바닥: 통기성과 탄성의 일본식 해법
(3) 동남아 고상형 구조: 바람을 품은 높은 바닥 구조
02. 시선을 낮추는 공간 디자인
(1) 좌식 생활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2) 높이를 낮춰 만드는 여백의 미학
(3) 낮은 자세로 마주하는 계절의 지혜
해를 거듭할수록 더 뜨거워지고 있는 여름. 기후 변화로 인한 극단적인 더위 속에서 우리는 냉방기기에 의존하기보다, 오랜 전통을 지닌 공간 속 지혜로부터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아시아의 좌식 문화에 주목해 보려 합니다. 한옥의 마루, 일본식 다다미, 동남아 고상형 주택처럼 좌식을 위한 구조는 단순한 생활 습관을 넘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건축적 전략이 되었는데요. 자세를 낮추는 것으로부터 더 시원한 여름나기를 시작해 봅니다.
01. 좌식 구조의 기후적 지혜
(1) 한옥의 마루: 땅과 떨어진 시원한 삶
한옥의 마루는 단순한 통로도, 거실도 아닙니다. 지면에서 약간 떠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이 수평 공간은, 공기를 다루는 가장 직관적이고 과학적인 장치입니다. 바닥 아래로 바람이 흐르며 열기를 분산시키고, 지열을 차단해 자연스러운 냉기를 유도하기 때문인데요. 지표면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떠 있는 마루는 여름철 땅의 열기를 차단하고 공기 흐름을 확보하여 자연적인 냉각 효과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전통 양식이 아닌 기후 조절을 위한 적극적 설계이며 단순히 앉는 공간이 아니라, 기후에 대응하는 구조적 장치로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한옥은 마루 아래의 공간을 통해 찬 공기를 저장하고 더운 공기를 위로 배출함으로써, 열역학 원리를 활용한 공기 흐름 구조를 구현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설계는 현대식 주택의 기계적 냉방 시스템 없이도, 일정 수준의 실내 온도 조절이 가능하게 합니다. 마당-마루-대청-방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바람을 불러들이는 ‘바람길’이자 곧 에너지 흐름의 순환 경로가 되어줍니다.
마루 위에 앉았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은 단지 목재의 감촉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건축 구조가 제공하는 시각적 개방감과 물리적 쾌적함이 동시에 작용해 발생하는 환경적 경험입니다. 아파트와 빌라 같은 현대식 주거 공간이 주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현대식 아파트나 주택에서도 이 구조를 응용해 볼 수 있습니다. 실내에 단차를 두고 목재 플랫폼을 만들거나, 거실에 낮은 단을 구성하면 바닥 아래 미세한 공기층이 형성되는데요. 이 작은 틈이 공간의 열기를 분산시키며, 발밑에서 전해지는 체감 온도를 낮춰 줍니다. 직접 앉지 않더라도, 그 존재만으로 실내 온도에 영향을 주는 조용한 장치가 되어 주는 셈입니다.
(2) 다다미 바닥: 통기성과 탄성의 일본식 해법
일본 전통 주택에서 가장 핵심적인 바닥 재료인 다다미는 단순한 마감재를 넘어, ‘앉는 감각’까지 세심하게 설계된 공간 매체입니다. 표면에 얇게 엮인 ‘이구사(藺草, 왕골)’는 손과 발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우면서도 탄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는 잘 말린 짚을 여러 겹으로 층층이 쌓아 만든 내부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이 다층 구조는 바닥에 닿는 신체의 하중을 흡수하는 동시에, 짚 사이에 형성된 공기층으로 단열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여름철에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습기를 차단하고, 겨울에는 냉기를 막아 사계절 내내 안정적인 바닥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요.
이러한 물리적 특성은 기후에 민감한 전통 일본 가옥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온다습한 일본의 여름, 특히 장마철처럼 실내에 습기가 가득 찰 수 있는 시기에도 다다미는 탁월한 습도 조절 기능을 발휘합니다. 이구사 자체가 자연적으로 습기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식물성 섬유이기 때문에, 실내 공기의 질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숨 쉬는 바닥’이라 불릴 정도죠.
오늘날에는 이러한 장점들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다다미 한 장은 최대 약 500ml의 수분을 흡수할 수 있으며, 이는 여름철 실내 습기를 조절해 곰팡이나 냄새, 불쾌지수까지 줄여주는 자연적 공기청정기 역할을 합니다. 일부 고급 다다미는 항균·방취 기능이 추가된 이구사를 사용하여, 기능성과 위생까지 고려한 현대적인 진화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다다미는 마치 한국의 한옥 마루처럼, 기후 환경에 맞춰 설계된 바닥 구조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옥의 마루가 땅에서 띄워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면, 다다미는 땅과 직접 닿아 있으면서도 짚 속 공기층을 활용해 통기성과 단열을 확보한 셈입니다. 결국 다다미와 마루는 다른 구조이지만 공간을 ‘차갑게 식히는’ 동일한 철학 위에 놓여 있습니다. 몸을 바닥 가까이 낮추는 생활은 단순히 문화적 습관이 아닌, 기후에 순응하고, 감각을 안정시키며, 삶의 리듬을 자연에 맞추는 태도였던 것입니다
(3) 동남아 고상형 구조: 바람을 품은 높은 바닥 구조
동남아시아의 전통 주거형태인 고상형 건축은 보이는 것처럼 지면에서 건물을 띄우는 구조입니다. 이는 비와 습기를 피하기 위한 기능적 선택이면서, 무더운 날씨 속 공기의 흐름을 극대화해주는 형태이기도 합니다. 바닥 아래를 비워두면 자연스럽게 대류 현상이 발생하고, 뜨거운 공기는 위로, 찬 공기는 아래로 흐르며 공간이 식어갑니다. 얼핏 바닥과 멀어지는 구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바닥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로부터 탄생한 방식입니다. 공기의 순환이 느껴질 수 있도록 쾌적한 좌식 생활을 위해 고안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02. 시선을 낮추는 공간 디자인
(1) 좌식 생활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좌식 구조는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를 넘어서, 사용자의 심리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몸이 낮아지면 시야가 바닥을 향하고, 천장이 높아 보이며, 그만큼 공간이 여유로워 보이니까요. 좁은 공간도 넓게 느껴지고, 가구와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높이를 낮춘다는 것은 곧 중심을 비운다는 것이며, 공간에 맞춰 감각을 조정하는 유연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여름철에는 이 구조가 더욱 유효합니다. 더운 공기는 위로, 찬 공기는 아래로 이동하기 때문에 좌식 공간에 앉는 것만으로도 체감 온도는 약간이나마 줄어듭니다. 이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바닥 중심의 감각이 여름과 조응하는 방식입니다.
(2) 높이를 낮춰 만드는 여백의 미학
낮은 디자인은 단순히 ‘작은 가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간 안에 남기는 여백을 확장하고, 빛과 바람이 더 멀리 퍼질 수 있게 만드는 구조적 장치입니다. 공간에서 높이를 낮추면 시각적으로 천장이 높아 보이고, 개방감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완성됩니다. 특히 여름철엔 이러한 시각적 통풍이 실제 체감 온도와도 연결됩니다. 짐으로 가득 차 있는 방보다, 비어 있는 방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심리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닙니다. 낮은 좌식 테이블, 얇고 부피감 적은 패브릭, 플로어 조명을 활용해 공기 순환을 높일 수 있는데요. 낮춘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이고, 비움은 곧 여름의 미학입니다.
낮은 가구를 활용한 레이아웃은 낮게 ‘꾸민다’ 보다는, 낮게 ‘재배치한다’라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방석과 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좌식 공간은 쉽게 바뀔 수 있고, 계절에 따라 구성 요소를 최소화하거나 확장하기 쉬워 유연하게 움직입니다. 계절마다 소파를 옮기는 것은 어렵지만, 방석이나 쿠션을 이동시키는 건 쉽듯이 말이죠. 특히 여름철에는 러그와 쿠션 같은 소프트한 소재들을 바닥 가까이 배치하고, 가구의 높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시야와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냉방 효율도 함께 높아집니다. 평소 짐을 높이 쌓아 두거나 높은 가구를 즐겨 사용해 왔다면 이번 여름에는 낮은 배치에 도전해 보세요. 바닥 중심의 생활은 처음엔 낯설 수 있지만,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에 바닥 가까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확연한 차이를 체감하게 됩니다. 현대적인 기술 없이도 쾌적한 여름을 위한 실질적인 대응이자, 전통에서 비롯된 생존의 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낮은 자세로 마주하는 계절의 지혜
여름은 견디는 계절이 아니라, 몸과 공간이 함께 적응해 가는 계절입니다. 냉방기기를 켜고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방식보다는, 구조 자체가 더위에 맞춰 호흡하도록 설계된 공간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좌식 구조와 낮은 가구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기후에 순응하고 감각을 재배치하는 일상의 기술입니다.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더 천천히 움직이며, 외부의 열기보다는 지면의 안정된 온도에 가까운 층에 몸을 두게 됩니다.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는 체열이 바닥으로 분산되고, 시각적 수평선이 낮아지며 공간 전체가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여름을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함께 지내는 자연의 리듬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 태도의 출발은, 무엇보다 몸을 낮추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여름나기의 효과적인 해법으로 ‘자세를 낮추는 인테리어’에 주목해 봤습니다. 한옥 마루, 다다미 바닥, 동남아 고상형 건축 같은 전통 건축의 기후 적응 전략은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의 실내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실용적 지혜입니다. 자세를 낮춘다는 것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일이며, 감각을 바닥에 가깝게 붙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올여름 ‘낮게 덜어내고 비우는’ 계절적 지혜를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시원한 해법은, 뛰어난 기술보다 낮은 자세일지 모릅니다.
※ 해당 컨텐츠 중 한옥의 구조 및 기후적 특성과 공간이 주는 심리적 영향에 대한 일부 내용은 도서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 임석재 지음>과 <안의종. (2014). 한옥의 친환경 특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요소 분석. KIEAE Journal, 14(5), 97-102.>를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컨텐츠는 (주)엘엑스하우시스에 귀속되며, 무단으로 이용할 경우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해당 컨텐츠의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주)엘엑스하우시스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 해당 컨텐츠 내 이미지는 Shutterstock에서 유료로 제공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