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도시의 여름 건축
[목차]
01. 북유럽의 지리적 특성과 여름
02. 북유럽 건축의 대표적인 여름 설계 특징
03. 북유럽 건축의 여름 지혜를 실내에 적용하는 방법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의 한 가운데, 잠시 집 밖에 서 있는 것조차 두려운 한여름입니다. 집 안에서라도 시각적으로 시원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면, 북유럽 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북유럽은 혹독하고 긴 겨울로 유명하지만, 역설적으로 ‘여름을 가장 잘 누리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해가 좀처럼 지지 않는 백야의 계절, 북유럽의 여름은 짧지만 강렬하고 소중합니다. 긴 겨울의 기다림을 견뎌내고 찾아온 여름, 북유럽의 공간은 그 빛을 품는 방식으로 설계됩니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럽의 건축가들은 자연과의 연결, 빛의 활용,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디자인 언어를 통해 여름을 더욱 풍요롭게 즐기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 글에서는 북유럽 건축의 특징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여름 인테리어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01. 북유럽의 지리적 특성과 여름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높은 위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여름은 ‘백야(白夜)’라는 독특한 자연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백야란 해가 지지 않아 밤에도 하늘이 밝게 유지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북유럽에서는 밤 10시가 넘어도 바깥이 훤히 밝은 경우가 흔합니다.
이러한 백야 현상은 지구가 자전축을 기울인 채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여름철에는 북반구가 태양 쪽으로 기울어지며, 하루 동안 햇빛이 머무는 시간이 현저히 길어집니다. 특히 6월과 7월에는 해가 이른 아침에 떠서 밤늦게까지 지지 않고 머물며, 어떤 지역에서는 5월부터 8월까지 해가 완전히 지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이처럼 낮이 길고 햇빛이 오래 머무는 북유럽의 여름은 건축과 인테리어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핀란드 헬싱키의 사례만 보더라도 호숫가 주변에 지어진 건물들은 자연환경과의 어울림을 우선으로 하며, 빛의 방향과 시간, 자연의 변화를 섬세하게 고려한 설계를 따릅니다. 건축가는 창문의 위치, 천장의 높이, 재료의 반사율까지도 자세히 계획하여, 여름 햇살을 집 안 깊숙이 들이도록 디자인합니다.
북유럽의 여름은 짧지만 그만큼 귀한 계절입니다. 그 소중한 기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북유럽 사람들은 집을 짓는 순간부터 자연을 삶의 중심에 두고 설계해 왔습니다. 햇빛이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계절의 변화를 공간 속에 담아내는 것은 북유럽 건축이 우리에게 전하는 지혜이며, 여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02. 북유럽 건축의 대표적인 여름 설계 특징
북유럽 사람들은 낮이 길고 햇빛이 오래 머무는 여름의 자연을 최대한 풍요롭게 누리기 위해, 집을 지을 때부터 공간을 신중하게 설계합니다. 자연환경, 햇빛의 방향,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것이 북유럽 건축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이제부터 여름을 위한 북유럽 건축의 대표적인 세 가지 설계 방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연결 구조
전통적으로 북유럽 건축은 실내외의 경계를 흐리며, 마치 자연이 집 안으로 스며든 듯한 공간을 지향합니다. 이를 위해 정원, 마당, 포치(porch)라고 불리는 지붕이 달린 외부 공간을 집 안 구조에 자연스럽게 통합시킵니다. 이처럼 연결된 외부 공간은 일상 속 거실과 이어지며, 실내에 머무는 동안에도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기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북유럽 전통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잔디 지붕(sod roof)’은 지붕 위에 흙과 식물을 덮어 만든 구조로, 여름의 더위를 막고 겨울에는 보온을 유지해 주는 기능을 겸합니다. 처음에는 주변 자연환경에 집을 숨기기 위한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집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2) 빛을 극대화하는 구조적 설계
북유럽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바로 ‘빛’입니다. 여름의 부드럽고 긴 햇살을 실내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한 구조적 설계는 매우 정교하게 이뤄집니다. 수평으로 길게 낸 통창은 풍경을 넓게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낮은 태양 각도에서도 햇빛을 집 안으로 깊게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동향 창은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아 하루를 자연광으로 기분 좋게 시작하게 해주고, 천장 가까이에 배치된 채광창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의 그림자를 벽에 드리워 공간의 분위기를 다층적으로 연출합니다. 햇빛이 너무 강한 시간대에는 긴 포치나 낮은 지붕이 자연스러운 그늘을 형성해, 직사광의 부담은 줄이면서 빛의 흐름은 유지하게 됩니다. 북유럽의 집은 그야말로 ‘빛이 흐르는 통로’처럼 작동하도록 설계되는 것입니다.
(3) 시각적으로 시원한 컬러와 미니멀 디자인
여름의 산뜻함을 살리는 데 있어 색채와 디자인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북유럽 인테리어에서는 화이트, 베이지, 연한 나무색처럼 자연을 닮은 밝고 부드러운 컬러 팔레트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는 공간을 더욱 넓고 밝게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여름의 시원한 인상을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여기에 생기 있는 컬러를 소품이나 패브릭에 포인트로 더하면 공간에 계절의 생생한 감각이 살아납니다. 가구 배치는 꼭 필요한 기능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여백을 살려 시각적 여백을 주는 것이 특징입니다. 복잡한 장식 대신 소재 본연의 질감이나 자연광에 반사되는 표면의 광택을 통해 개성을 표현하죠. 이처럼 북유럽의 미니멀한 디자인 언어는 ‘미니멀리즘’이라는 거창한 사조보다 계절의 감각과 사람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매개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03. 북유럽 건축의 여름 지혜를 실내에 적용하는 방법
북유럽의 여름 건축은 자연을 끌어안는 구조적 해법뿐 아니라, 일상의 실내 공간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인테리어 전략도 함께 제안합니다. 짧지만 강렬한 여름을 오롯이 누리기 위한 그들의 감각은 우리 일상 속 공간에도 신선한 영감을 주는데요. 실현 가능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1) 매개 공간이 되는 ‘야외 거실’ 만들기
집 안의 작은 마당이나 정원은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지붕 없는 거실’처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전망이 좋은 위치에 낮은 돌담을 쌓고, 그 위로 작은 창을 내어 숲이나 호수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하는 방식을 들 수 있는데요.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어머니를 위해 스위스에 지은 ‘작은 집’도 그러한 설계를 따르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유명 건축물의 경우에도 실내에 들어서기 전 반드시 중정을 지나도록 유도해 마치 자연 속을 산책하며 집 안으로 들어서는 느낌을 의도했습니다.
이러한 ‘자연과의 중간 지대’를 집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외부와 실내 사이에 여러 레이어를 구성해 볼 수 있습니다. 베란다가 있다면 그 공간을 활용하고, 베란다가 없는 거실이라도 외부 창 쪽으로 테라코타 타일이나 데크, 러그를 깔아 시각적으로 공간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작은 테이블, 체어, 식물 등을 배치하면 도심 속에서도 아늑한 야외 거실이 완성됩니다.
(2) 원목 가구에 색채 팔레트를 활용하기
북유럽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풍부한 침엽수 자원을 활용해 원목 가구를 제작해 왔습니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여름에는 여기에 밝고 산뜻한 컬러를 더해 계절의 분위기를 환기합니다.
레몬 옐로, 파스텔 블루, 오렌지 등의 컬러는 북유럽 건축가들이 자주 사용한 여름의 색입니다. 이러한 컬러는 패브릭, 쿠션, 커튼, 혹은 포스터와 액자 등의 소품을 통해 간결하게 더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순한 색채 변화만으로도 공간은 한결 시원하고 생동감 있게 바뀔 수 있고, 이러한 감각적 전환은 심리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북유럽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추구하듯, 색은 그 일상의 감도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3) 가구 배치와 시선의 여백 설계
가구의 배치만으로도 공간의 개방감과 분위기는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창문이나 바깥 풍경을 정면이 아닌 사선으로 바라보도록 배치하면 시선이 부드럽게 열리며, 공간이 더 유연하고 확장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미묘하게 비틀린 구조는 시선과 공간의 흐름에 변화를 주며, 공간을 단순한 정방형에서 벗어나 밝고 어두움, 협소함과 개방감이 공존하는 리듬감 있는 분위기로 이끕니다 . 이 점에 착안해 벽에 딱 붙여놓은 소파를 사선으로 살짝 비틀어 배치해 본다면 같은 공간이라도 그 안에서 느끼는 분위기와 경험의 폭이 훨씬 풍부해질 수 있습니다.
한편, 여백은 공간에 시각적으로 ‘숨쉴 틈’을 제공합니다. 불필요하게 많은 가구를 배치하기보다, 가볍고 이동이 쉬운 모듈형 가구를 활용해 계절과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성해 보세요. 공간을 고정된 구조가 아닌, ‘움직이는 무대’처럼 유연하게 다루는 것이 북유럽 인테리어가 제안하는 또 하나의 여름나기 방식입니다.
북유럽의 여름은 짧지만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입니다. 건축과 인테리어는 이 계절의 감각을 담아내기 위해 자연, 빛, 구조의 결합이라는 섬세한 전략을 펼쳐왔습니다. 실내외를 잇는 매개 공간으로 해석한 정원을 비롯해 채광창, 포치, 미니멀 디자인은 모두 자연과 실내의 경계를 허물며 여름을 공간 안으로 초대하는 장치들입니다. 이러한 해법은 우리 일상 속 주거 공간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단서를 던져줍니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 계절을 예민하게 느끼고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이를 기능적으로 담아내는 공간. 결국 북유럽의 여름 건축은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의 철학이자,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실천적인 답변이 아닐까요?
※ 해당 컨텐츠 중 동향 창과 핀란드 건축물에 대한 내용은 <집을, 순례하다 저자: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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