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건축, 메타볼리즘

[목차]
01. 자연에서 배운 건축 철학
02. 작은 단위가 만드는 가능성
03. 하나의 건축이 되는 도시
04. 오늘날의 메타볼리즘

"건축도 생물처럼 자라고 변화할 수 있을까?"

1960년대 일본에서 시작된 이 혁명적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언제든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대, 모듈러 가구로 방 구조를 바꾸는 일상, 그리고 팝업스토어처럼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공간들. 이 모든 것의 철학적 뿌리는 반세기 전 일본 건축가들이 꿈꾼 '메타볼리즘(Metabolism)'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정불변의 구조물이라 여겨졌던 건축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상상, 그것이 바로 메타볼리즘 건축 운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01. 자연에서 배운 건축 철학

세포는 분열하고 재생하며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오래된 세포는 죽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하지만 개체는 살아있습니다. 1960년대 일본 건축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건축물도 이처럼 부분은 교체되지만 전체는 지속되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메타볼리즘 운동을 주도했던 건축가들은 건축을 '과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하고 적응하는 시스템으로서의 건축. 이는 서구의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영원불변의 완벽한 형태와는 정반대의 사고였습니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 일본은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절실히 필요로 했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고, 전통적인 건축 방식으로는 이런 급격한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메타볼리즘 건축가들은 고정된 형태를 거부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설계의 중심에 두는 혁신적 사고를 제시했습니다. 이들에게 건축은 완성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소프트웨어 같은 존재였습니다.

02. 작은 단위가 만드는 가능성

레고 블록을 생각해 봅시다. 동일한 규격의 작은 블록들이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메타볼리즘 건축가들이 제시한 모듈 시스템도 같은 원리였습니다. 표준화된 단위가 창조하는 다양성의 역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조립과 분해, 그리고 재조립이 가능한 구조는 건축의 영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과거의 건물은 한 번 지으면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메타볼리즘은 건물도 주기적으로 부품을 교체하며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레고 블록을 조합하듯,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쉽게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의적인 공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초에 실현된 대표적인 캡슐형 건축물은 메타볼리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 타워에 설치된 100여 개의 캡슐은 각각 독립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했습니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캡슐은 용도 변경과 노후화에 따라 교체될 것을 전제로 했으며,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건축이 능동적이고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구조였습니다.

03. 하나의 건축이 되는 도시

하나의 방이 아니라, 건물 자체가 모듈이 된다면 어떨까요? 메타볼리즘 건축가들의 상상력은 개별 건물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들이 제시한 메가스트럭처 개념은 인프라와 주거를 분리하는 '뼈대와 살'의 구조였습니다. 거대한 뼈대(인프라) 안에서 주거와 상업 공간(살)들이 자유롭게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비전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토지가 부족한 도심에서 수직적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해상이나 공중에서도 도시를 구성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뒷받침하였습니다. 이는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사고의 결정체였습니다.

한정된 토지에 대한 3차원적 해법을 모색했던 메타볼리즘 건축가들의 비전은 오늘날 수직 농장이나 해상 도시 프로젝트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수직 농장, 네덜란드의 해상 주택 단지, 그리고 다양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들은 모두 메타볼리즘의 개념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04. 오늘날의 메타볼리즘

오늘날 메타볼리즘의 개념은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듈러 주택, 프리패브 건축, 컨테이너 하우스 등은 생산과 설치가 빠르고, 필요에 따라 구조를 변경할 수 있어 대중화되었습니다. 또한 팝업스토어, 임시 전시관, 축제 부스 같은 일시적 건축은 메타볼리즘의 가변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고정된 건물에 모든 기능을 담는 대신, 짧은 기간 동안 필요한 기능과 디자인을 구현하고 철거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소비문화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커다란 건축에만 수공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페나 상점과 같은 실내 공간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수공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비나 아트리움에 설치된 실내 분수, 벽면을 따라 흐르는 수막은 실내에 자연의 흐름을 들이며 머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가변성'이 물리적 건축을 넘어 디지털 환경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듈러 가구는 사용자의 생활 패턴에 맞춰 손쉽게 형태를 바꿀 수 있고, 스마트폰 화면이나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통해 공간 분위기를 즉시 전환하는 일도 흔해졌습니다. 이는 물리적 모듈과 디지털 모듈이 공존하는 새로운 형태의 메타볼리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메타볼리즘이 제시한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서는 사고방식의 전환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건축이란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을 품은 구조입니다.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설계에 포함하는 건축적 사고가 앞으로의 도시와 공간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입니다. 메타볼리즘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이 '변화를 설계하는 방법'입니다.

※ 해당 컨텐츠 중 메타볼리즘 건축의 특징에 대한 내용은 <권제중. (2014). ‘전통’이 일본 메타볼리즘 그룹의 형성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30(9), 143-152.>와 <임희재 and 이대준. (2014). 메타볼리즘 건축의 사상과 세계관에 대한 고찰: 타푸리의 아방가르드 비판의 관점을 중심으로. 문화산업연구, 14(3), 103-111.>을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컨텐츠 중 메타볼리즘 건축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콘노 유키 and 정연심. (2018). 일본 메타볼리즘 건축 운동의 사상적 토대. 예술과 과학기술, 14(3), 109-127.>를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컨텐츠 중 메가스트럭처 디자인에 대한 내용은 <최영철, 구영민. 메타볼리즘의 개념을 적용한 메가스트럭처 디자인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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