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쿨루스에서 로즈윈도우, 팔라디오 창, 그리고 커튼월까지
[목차]
01. 오쿨루스, 로마가 열어젖힌 하늘의 창
02. 로즈윈도우, 고딕 시대 신앙이 빚어낸 빛의 예술
03. 팔라디오 창, 비례와 이성이 담긴 르네상스의 창
04. 베이 윈도우, 산업혁명과 함께 찾아온 개성 표현의 욕구
05. 커튼월, 철과 유리가 만든 투명한 혁명
건축에서 창문은 단순히 개구부가 아니라 건물의 쾌적함을 결정하고 미적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처음 건축이 생겨났을 때부터 곡선 형태의 창, 다양한 방식으로 나뉜 프레임 등 수많은 건축적인 시도가 이어져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창문의 기나긴 여정은 로마 판테온의 신비로운 오쿨루스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01. 오쿨루스, 로마가 열어젖힌 하늘의 창
서기 125년 완성된 로마 판테온의 돔 정상에는 지름 9미터의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두께 6미터가 넘는 벽과 43미터 높이의 돔에 만들어진 이 구멍은 ‘오쿨루스(Oculus)’라 불렸습니다. 라틴어로 ‘눈’을 뜻하는 오쿨루스는 하늘을 바라보는 신들의 눈이라는 뜻입니다.
이 오쿨루스가 놀라운 것은 거대한 구멍이 하늘을 향해 뚫려있음에도 내부로 비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건물 내부의 뜨거운 공기가 상승하며 만들어 내는 굴뚝 효과는 내부와 외부의 온도차로 자연스럽게 환기를 시키는 것과 동시에 빗방울이 내부로 떨어지는 것을 막습니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의 과학적 설계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로마의 콘크리트 기술과 결합한 오쿨루스는 창문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힌 혁명이었습니다.
02. 로즈윈도우, 고딕 시대 신앙이 빚어낸 빛의 예술
중세 유럽은 유리 제작 기술과 석조 기술이 동시에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수도원의 실험실에서 발전한 유리 기술은 플라잉 버트레스 구조와 만나, 벽 전체를 뚫는 거대한 창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로써 건물은 더 이상 어둠의 공간이 아니라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신비로운 무대로 변모했습니다.
그 결정체가 원형 창, 즉 로즈윈도우입니다.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구성된 이 창들은 각각 고유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색유리들은 빛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드러내며, 시간과 계절에 따라 교회 내부의 분위기를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중세 사람들의 세계관과 신앙을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매체였습니다. 문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각적 교육 도구가 되었고,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는 깊이 있는 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창문은 이렇게 신성한 공간과 속세를 연결하는 창구 기능을 했습니다.
03. 팔라디오 창, 비례와 이성이 담긴 르네상스의 창
르네상스 시대에 창문은 인간의 이성과 수학적 질서를 반영하는 요소로 재정의되었습니다. 중앙에 아치가 있고 양옆에 사각 창이 배치된 삼분할 구조의 창은 고전 건축의 질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형태였습니다. "미국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고안한, 이른바 '팔라디오 창'은 고대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아 비례와 대칭의 원리를 구현했습니다. 이 창은 베네치아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어 '베네치아 창'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베네치아 근처 도시인 비센차의 공공건물에서 볼 수 있는 이 창들은 단순히 빛을 들이는 장치가 아니라 인문주의적 세계관의 표현이었습니다. 수학적 비율이 적용되어 질서와 조화가 강조되었고, 판유리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창의 크기도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이 시기 일부 건축에서는 공간을 확장하려는 욕망이 베이 윈도우와 같은 새로운 창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04. 베이 윈도우, 산업혁명과 함께 찾아온 개성 표현의 욕구
18세기 영국에서 창문은 규율과 격식을 나타내는 요소였습니다. 도르래 시스템을 활용한 새시창이 발명되면서 상하로 미는 방식의 개폐가 가능해졌습니다. 작은 판유리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6 over 6' 방식의 분할 창이 도입되었고, 왕실 건축을 통해 이 형식은 영국 전역에 확산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창문 제작에도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대형 판유리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2 over 2'와 같은 간단한 분할 방식이 등장했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창문은 귀족의 전유물이 아닌 중산층 가정의 일상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절정은 베이 윈도우였습니다. 건물 외벽에서 바깥으로 돌출된 형태의 창은 내부 공간을 확장하고, 외부로 향하는 시야를 넓히며 거주자의 개성과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표현 수단이 되었습니다. 19세기 영국 교외 주택에서 베이 윈도우는 중산층의 부상과 욕망을 대변했습니다.
05. 커튼월, 철과 유리가 만든 투명한 혁명
19세기 중반 런던에 세워진 대형 유리 건축물은 건축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철골 구조와 유리 패널이 결합한 건축물은 이후 커튼월 시스템으로 발전했습니다. 커튼월이란 건물의 구조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마치 커튼처럼 '걸린' 외벽 시스템을 말합니다. 벽은 더 이상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물이 아니라, 단순히 외부 환경을 차단하는 외피가 되었습니다.
건물의 골격과 외피가 완전히 분리되면서 건축가들은 전에 없던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해졌습니다. 20세기 초 고층 건축에서는 커튼월이 보편적 요소가 되었습니다. 건물은 투명한 유리 상자가 되었고, 내부와 외부를 잇는 경계는 최소화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건축 언어가 되어 개방성과 합리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건축의 핵심이 되었고, 도시 풍경은 유리와 철의 조화로 새롭게 변모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커튼월은 현대 건축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외벽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로마의 오쿨루스부터 커튼월까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창문의 역사는 쉬지 않고 진화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 날씨나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투명도를 조절하거나 자동 환기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윈도우가 생겨나고 있죠. 창문은 분명 건축의 단순한 요소가 아닙니다.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물리적 구현체이자, 기술과 미학이 만나는 접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각 시대의 창문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꿈과 욕망, 기술적 성취와 미적 이상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창문이야말로 인류 문명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거울이 아닐까요?
※ 해당 컨텐츠 중 로즈윈도우에 대한 내용은 <유지나. (2023). 건축 표피의 장식적 상징성과 역할에 관한 연구 : 서양 근세 이전 건축물의 기둥과 창을 중심으로.>를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컨텐츠 중 팔라디오 창에 대한 내용은 <오화미. (2004).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건축에 나타난 고전 건축 요소와 그 변형에 관한 연구>를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컨텐츠 중 베이 윈도우에 대한 내용은 주한영국문화원 공식 블로그를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컨텐츠 중 커튼월에 대한 내용은 <요만, 데이비드 (1998). 커튼월의 선사 시대. 건설 역사. 14 : 74. ISSN 0267-7768 (영어)>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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