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공간 치수 점검하기
[목차]
01.인체 공학에 근거한 공간 디자인, 왜 필요할까?
02. 주방: ‘작업 삼각형’에서 ‘소셜 아일랜드’로
03. 거실: tv 중심에서 라운지 중심으로
04. 작업실: 집중과 몰입을 위한 최적의 세팅
05. 수치와 감각의 균형
‘건축이란 생활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바우하우스 운동의 창시자였던 독일 건출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생활을 디자인하려면 우리는 먼저 인체의 수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집의 편안함은 인체 공학적 수치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방 조명이 식탁 위 어느 높이에 달려야 하는지, 소파 앞 테이블은 어느 정도 높이가 적당한지와 같은 세부 기준은 인체공학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공간이 꼭 공식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 생활 방식, 최신 공간 트렌드에 따라 수치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본적인 인체공학 치수와 오늘날 공간 트렌드를 함께 살펴보며, 집을 ‘나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려 합니다.
01. 인체 공학에 근거한 공간 디자인, 왜 필요할까?
스웨덴은 주택 인체 공학 연구 분야에서 선구적인 나라 중 하나입니다. 1940년대 초 주택연구소를 설립해 국가 지원 아래 ‘주거 생활의 표준’을 마련하고 교육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사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건축 기준과 표준이 만들어졌고, 이후 이어진 연구들은 오늘날 더 안전하고 편리한 주택 설계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예쁘다'라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손이 닿는 높이, 앉고 일어서기 편한 간격, 통로의 너비 같은 요소가 생활의 질을 좌우합니다. 이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것이 인체공학(Ergonomics)이고, 건축과 인테리어에서는 인체측정학(Anthropometry)으로 구체화합니다. 인체측정학은 사람의 신체 치수를 계측해 수치화하는 학문으로, 가구 제조업체와 디자이너들이 기능적이고 편리한 공간을 설계할 때 꼭 참고하는 데이터입니다.
식탁과 의자 높이의 차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2~3cm만 달라져도 앉았을 때의 편안함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서재 책상의 깊이가 충분치 않으면 노트북과 책, 필기도구를 동시에 두기 힘들고, 허리를 더 숙이거나 자세를 불편하게 바꾸면서 피로가 쌓이게 됩니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치수는 건축 기준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지침이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규칙으로 여길 필요는 없지만, 몸에 맞는 공간은 결국 더 편안하고 즐겁게 머물 수 있는 집이 된다는 점만은 분명한데요. 집을 기능적이고 쾌적한 집으로 만들고 싶다면, 인체 측정학의 기준을 참고하는 일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겁니다.
02. 주방: ‘작업 삼각형’에서 ‘소셜 아일랜드’로
주방 인테리어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작업 삼각형’입니다. 개수대, 냉장고, 조리대(혹은 화구)가 한 걸음 안에서 오갈 수 있는 거리에 배치되어야 효율적입니다. 이때 개수대와 화구 사이의 조리대 폭은 최소 80cm, 이상적으로는 120cm가 적당합니다. 조리대 깊이는 60cm가 기본, 여유가 있다면 70cm로 넓혀 수납과 활용성을 높일 수 있는데요. 높이는 보통 85~90cm, 키가 큰 가족이라면 95cm까지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전 배치와 동선도 중요합니다. 오븐이나 식기세척기 앞에는 최소 120cm의 여유 공간이 필요하고,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는 주방이라면 마주 보는 조리대 사이 간격을 140cm 정도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콘센트는 벽 1.5m당 2구씩 설치하는 것이 좋고, 자주 사용하는 전기 포트나 토스터용 콘센트는 조리대 높이에, 드물게 쓰는 기기용 콘센트는 상부장 아래에 두면 효율적입니다.
식탁은 바닥에서 상판까지 72~75cm가 적당하며, 의자 좌석 높이는 41~45cm가 편안합니다. 의자와 식탁 사이 간격은 약 27~30cm를 확보해야 앉고 일어서기가 수월합니다. 원형 식탁은 4~5인용 기준 최소 지름 110cm, 6인용은 120cm 이상을 권장합니다. 직사각형 식탁은 너비가 최소 80cm는 되어야 합니다.
한편, 식탁 위에 조명을 설치할 때는 높이에 신경 써야 합니다. 조명이 너무 위에 있으면 빛이 제대로 분산되지 않아 눈이 부시고, 반대로 너무 아래에 있으면 조명에 머리를 부딪힐 위험이 있기 때문인데요. 조명의 최적 높이는 전구(광원)가 전등갓 안에서 얼마나 높이 달려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전구가 낮게 위치하는 것도 눈부심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식탁 상판에서 광원까지의 거리는 약 50~60cm가 적당합니다.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식탁 상판에서 50~60cm 높이를 기준으로 조명 설치를 권장합니다. 조명등의 형태와 거주자의 키에 따라 약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으나, 이 높이라면 눈부심 없이 식탁 전체를 밝힐 수 있고, 전등갓이 시야를 가리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주방은 오래도록 ‘효율’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는데요. 최근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주방은 가족과 손님이 모이는 ‘소셜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이를 대표하는 것이 아일랜드 키친입니다.
요즘 아일랜드는 조리대를 넘어 다기능 공간으로 쓰입니다. 아침에는 커피 바, 저녁에는 홈 파티를 위한 미니 바가 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는데요. 전통적으로 85cm 전후였던 아일랜드 높이는 평균 신장이 커지고 남성의 주방 참여가 늘면서 95~100cm까지 높이는 경우가 많아졌고, 개수대를 추가로 설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식사를 준비하거나 정리하면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식사, 업무, 대화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어 주방이 ‘닫힌 작업 공간’에서 ‘열린 소셜형 공간’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03. 거실: TV 중심에서 라운지 중심으로
한때 거실은 ‘가족 모두가 모여 TV를 보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파는 TV 맞은편에, 테이블은 소파 앞에 규칙적으로 놓이는 것이 당연했지만 요즘은 그 형태가 변화했습니다.
거실 인테리어의 기본은 편안한 동선과 적절한 간격입니다. 소파는 뒷벽 너비의 2/3보다 넓지 않아야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습니다. 소파 테이블 높이는 약 40cm, 소파 좌석 높이에 따라 ±10cm 조정하면 됩니다. 소파와 테이블 사이 간격은 30~40cm가 이상적이며, 가구 사이 통로는 최소 50~60cm는 확보해야 합니다. 1인 좌석 기준 너비는 약 60cm로 잡으면 무리가 없습니다.
요즘은 TV 없는 거실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트렌드는 거실을 라운지형 멀티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식사, 독서, 취미, 재택근무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리빙다이닝’ 스타일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이를 대표하는 가구가 라운지형 테이블입니다. 일반 식탁(72~75cm)은 소파와 함께 쓰기에는 높이가 맞지 않는데요. 그래서 최근에는 높이 60~65cm의 직사각 또는 원형 테이블이 등장했습니다. 이 높이는 소파와 매치하기에 적당하여, 간단한 식사부터 노트북 작업, 티타임까지 가능한 라운지 공간을 완성해 줍니다. 거실은 이제 TV 앞의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각자의 활동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현대적 라운지로 변모하고 있는 셈입니다.
04. 서재: 집중과 몰입을 위한 최적의 세팅
집에서의 작업 공간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때 책상과 의자의 높이, 모니터와 눈의 거리 같은 인체공학적 세팅은 생산성과 건강을 좌우합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목이나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인체공학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한데요.
책상의 상판 크기는 세로 75cm, 가로 120~150cm 정도면 충분합니다. 책상 높이는 약 75cm가 일반적이며, 컴퓨터 작업용 책상은 이보다 약간 낮게 설계되기도 합니다. 책상 의자의 좌석은 약 40×50cm, 좌석 높이는 41~45cm가 권장되는데,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제품이면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책상 앞에는 의자가 드나들 수 있도록 약 60~70cm의 여유 공간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05. 수치와 감각의 균형
인체공학적 수치는 아주 유용한 출발점입니다. 적정 높이와 최소 동선 너비 같은 기준은 몸의 피로를 줄이고 안전을 높이며 동작을 효율화해 줍니다. 그렇지만 수치가 곧 정답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신체, 습관, 취향이기 때문에 수치는 ‘기준’으로 삼되,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먼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를 명확히 정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평균 신장, 노약자·어린이 유무, 자주 하는 활동(요리/재택근무/홈파티 등)을 한번 정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하루의 동선을 자세히 관찰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족들이 주로 어느 공간에서 얼마만큼 머무는지를 기록하면 실제 생활 패턴에 맞춘 최적의 배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편안한가’입니다. 수치를 참고하되, 나의 생활 방식과 감각을 담아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집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비밀입니다.
※ 해당 컨텐츠 중 공간별 치수와 비율에 대한 내용은 <인테리어 디자인과 스타일링의 기본 저자: 프리다 람스테드>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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