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의 홋카이도 건축
[목차]
01. 원주민의 겨울 지혜: 전통건축 ‘치세’
02. 눈과 추위를 다스리는 경계: 지붕과 겐칸
03. 몸을 데우는 코타츠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 섬의 겨울은 혹독합니다. 한 해에 6미터가 넘는 눈이 내리고,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집니다. 10월 말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4, 5월까지 눈이 녹지 않으니 최대 6개월은 겨울인 셈입니다. 이런 극한의 환경 속에서 흥미로운 점은 홋카이도 사람들이 추위와 눈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겨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홋카이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전통 주거부터 근대 이후 일본 본토에서 들어온 기술들까지, 겨울을 나는 방법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01. 원주민의 겨울 지혜: 전통건축 ‘치세’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은 일본 본토 사람들과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여름에는 연어를 잡아 말리고, 가을에는 산에서 곰과 사슴을 사냥하고, 겨울이 오면 미리 저장해둔 식량으로 긴 추위를 견뎠습니다. 특히 긴 겨울 밤이면 불 주위에 모여 앉아 많은 시간을 집 안에서 보냈으니, 아이누족에게 '집'의 의미는 특별했을 것입니다.
아이누족이 살았던 전통 주거를 '치세'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치세는 가로 6~8미터, 높이 3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집으로, 나무 기둥으로 뼈대를 세우고 갈대와 나무껍질로 30~40센티미터 두께의 벽과 지붕을 감쌌습니다. 찬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출입구는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고 작게 만들었고, 창문도 최소한으로만 냈습니다. 밝기보다는 따뜻함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죠. 지붕은 눈이 쌓이면 저절로 미끄러질 수 있도록 가파른 경사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눈이 지붕 위에 남아 있는 것도 오히려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눈이 이불처럼 집을 감싸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치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닥 중앙에 있는 화덕이었습니다. 화덕에서 불을 피워 난방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밤에는 불빛으로 어둠을 밝혔으니 집의 중심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화덕은 공간 전체를 데우는 것보다는 사람의 생활 영역을 따뜻하게 만드는 데에 집중했고, 이것이 바로 치세의 난방 개념이었습니다.
화덕에서 나는 연기는 지붕 천장의 구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갔지만, 미처 나가지 않은 연기도 오히려 유용했습니다. 연기가 목재에 닿아 나무의 수분을 건조시키고, 나무 표면을 코팅해 부패를 늦추는 자연적인 방부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치세의 지붕은 반쯤 숨을 쉬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치세는 지금 현대건축의 언어로 말하자면, 건축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완벽히 지속가능한 순환의 건축일 것입니다. 치세를 짓는 재료는 모두 주변에서 구할 수 있었고, 갈대와 나무껍질은 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서 단열의 효과가 뛰어났으며 습기를 조절하는 기능도 했습니다. 3~5년 정도가 지나 외피가 낡으면 새 재료로 교체하면 되었고, 낡은 재료는 그대로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02. 눈과 추위를 다스리는 경계: 지붕과 겐칸
19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일본 본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왔고, 그들은 농사를 짓고 광산을 개발했습니다. 본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던 방식대로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지만, 본토에서 들어온 건축은 홋카이도의 혹독한 기후에 맞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홋카이도 건축에서 지붕은 두 가지 방식으로 눈을 다룹니다. 45도 이상의 가파른 경사로 지붕을 만들어 눈이 쌓이지 않고 미끄러지게 만들거나, 30~40도의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 지붕을 만들어 두텁게 쌓인 눈이 오히려 보온층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처마의 길이와 각도를 조절해 눈을 원하는 방식대로 이용하는 것은 치세의 급경사 지붕에서 시작된 지혜일 것입니다.
한편, 혹독한 기후를 이겨내는 또 다른 방식인 겐칸은 일본식 현관을 말합니다. 겐칸에서 신발을 벗는 곳과 집 안 바닥 사이에는 30~50센티미터 정도의 높이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큰 이 바닥 높이 차이는 눈과 진흙, 습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합니다. 또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으니, 집 안으로 한기가 유입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단차뿐 아니라 홋카이도의 겐칸에는 문이 두 개 존재합니다. 바깥쪽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1~2미터 정도의 공간이 있고, 다시 안쪽 문이 있어 사이에 완충공간을 둡니다. 이 공간은 난방으로 데운 공기가 바깥으로 바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동시에 홋카이도 사람들에게는 밖에서 입었던 두꺼운 옷을 벗고 집 안용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공간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03. 몸을 데우는 코타츠
코타츠의 역사는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바닥을 파서 그 안에서 숯불을 피우는 이로리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몸 전체를 데우기 어렵다고 느껴 그 위에 나무로 틀을 만들고 이불을 덮었습니다. 열기는 이불 안쪽에 갇혀 따뜻함이 오래 지속되었고, 이 방식이 코타츠의 시작입니다. 메이지 시대를 거치면서 코타츠는 추운 지방이던 홋카이도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요즈음의 코타츠는 숯불을 태우는 대신 전기히터를 사용하는 낮은 테이블을 말합니다. 테이블 하부에서 나오는 열기가 테이블을 두르고 있는 이불에 막히고, 사람들은 코타츠에 다리를 넣고 앉아 몸을 데웁니다. 홋카이도의 주택에서는 실내 온도를 18도 정도로 유지하면서 코타츠를 함께 사용해 사람이 있는 부분만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방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절약합니다.
홋카이도의 겨울 건축은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붕이 바깥의 눈을 다스리고, 겐칸이 경계에서의 추위를 막고, 코타츠가 안에서 사람을 데웁니다. 각각의 전략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겨울을 거스르지 않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또다시 겨울을 준비하는 우리들에게도 홋카이도의 겨울 건축은 지속가능한 삶이란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 해당 컨텐츠 중 치세에 대한 내용은 일본관광청의 아이누족 소개와 야쿠모시 관광 안내를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컨텐츠 중 겐칸에 대한 내용은 일본기상협회의 기사를 참고하였습니다.
※ 해당 컨텐츠 중 코타츠에 대한 내용은 IKIDANE NIPPON과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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